빵을 찾는 모험 ♩기억하기

갑자기 지난 주 부터 폴앤폴리나의 빵을 먹고싶어져서 안달복달이었다.
퇴근하자마자 달려가야지. 화이트 치아바타랑, 허브빵, 뺑오쇼콜라를 사서 집 근처 카페에서 천천히 뜯어먹으면서 책을 봐야겠다.하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훨씬 나아져서 그럭저럭 퇴근시간까지 잘 버텼다.
그런데 끝나자마자 종종거리며 갔는데도, 폴앤폴리나의 폐점시간을 10분 넘긴 7시 10분쯤에야 도착했고, 혹시나해서 가게에 가봤지만, 문에는 SOLD OUT 간판이 걸려있었다.

징징거리며 리치몬드에 갔다. 함께 일하는 언니에게 설날 선물을 받아서 나도 뭔가 답례를 해야했다. 리치몬드의 슈크림 한박스. 나는 내가 받고싶은걸 선물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동생과 나를 위해 따로 낱개로 3개를 더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은 슈크림은 딱 14개. 할 수 없지. 우선 12개 한 박스 포장해주세요. 하고 다른 빵을 둘러보는 사이에 글쎄 어느 커플이 와서 남은 두 개를 홀랑 사가버렸다. 홀랑. 결국 리치몬드 안을 뱅뱅 돌다가 그냥 슈 한박스를 들고 나왔다.



유난히 무거운 가죽에 스터드까지 잔뜩 박힌 가방은 벽돌처럼 무거웠고, 슈크림 12개도 꽤나 묵직해서 슬슬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그래도 노다메 칸타빌레 22권 한정판을 사러 가야했다. 탁상앨범과 파우치를 준다던데, 분명 집에 모셔두다가 언젠가 슬쩍 버리게 될테지만, 갖고싶었다. '한정'이라는 단어는 힘이 세다.
낑낑거리며 만화책을 사러갔지만, 금요일까지도 있었던 노다메가 토요일에는 품절이었다. 내가 한정판을 얕봤나보다. 그냥 만화책 한권 달랑 들고나오기가 아쉬워서, '커피 한 잔 더'1권도 함께 샀다. 가방은 훨씬 더 무거워졌다.

배가 고파졌다. 그리고 치아바타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그래서 그냥 근처에 있는 파리바게트 카페에 갔다. 거기는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거의 모든 빵이 가득 차 있었다. 물론 화이트 치아바타도 있었다. 좀 불쾌한 느낌의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그래도 화이트 치아바타니까 사야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거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딱 이거 한 개 사들고 나왔다.



배가 심하게 고파져서 도저히 저 빵 한개를 먹고는 1시까지 못 버틸것 같았다. 프런코#2는 1시에 끝나는데...게다가 만약에 이 치아바타가 지독히 맛이없기라도하면 난 끝장인데. 길에다가 가방을 버리고 가고싶은 마음을 꾹 참고 또 다시 쿄베이커리로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점점 집에 가까운 방향으로 가고있긴 하구나. 쿄베이커리는 꽤 늦은 시간인데도 식사빵들이 꽤 남아있었다. 포카치아!!!!! 포카치아가 큼직하게 잘려서 김이 빠지길 기다리며 봉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먹이를 낚아채는 매보다 빠른 속도로 한 봉지를 집어들고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식초를 사서 신나게 룰루랄라♩


하지만 동생이 원하던 샌드위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온거 그냥 다 돌자. 좀 더 걷다가 내가 쓰러지면 니가 날 업고가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가자. 그래서 결국 상수역 파리바게트까지. 동생 샌드위치 고르는 동안 난 또 눈을 번득이며 빵구경을 하다가 '새우품은 야채롤'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런데 파리바게트 언제부터 이런 네이밍을 시작했으며, 왜 또 빵옆에다가 칼로리는 크게 적어놓은 거지. 칼로리가 높다고 안먹을 건 아니지만 신경쓰이잖아.

겨우겨우 집에 돌아와서 새우야채롤을 전자렌지에 데워 입에 넣는 순간 나도모르게 '으허'하고 살겠다는 소리를 냈다. 막 물에서 건져올려진 사람처럼. 아니 동물처럼.

빵을 한 입 먹고 나서야 코트도 벗고, 짐도 좀 정리하고, 커피도 타서 자리잡고 앉아서 오늘 모아온 빵들을 펼쳐놓고 시식회를 열었다. 파리바게트 치아바타는 우려했던대로 였다. 한입 뜯어먹고 다시 봉지를 꼭 묶어서 안보이는 곳에 뒀다. 이 찔깃한 밀가루 덩어리는 뭐냐며. 쿄베이커리 포카치아는 허브향이 잔뜩나고 식감도 맘에 들어서 한봉지 다 먹을 기세였으나, 워낙 기름진 빵인데다가 올리브오일을 찍어서 먹다보니 좀 부담스러워져서 피클을 꺼냈다. 피자먹다 남은 피클. 비루하다.


이 다음에는 파스타가 한 접시 나와줘야할 것 같지만 그런건 없으니까 빵을 열심히 먹었다. 커다란 걸 반이나 먹었다. 그러고나선 느긋하게 심야식당1화를 봤다. 100%의 밤은 아니지만, 85%정도는 되는 밤이었다.



덧글

  • 2010/02/07 14:41 # 답글

    안녕하세요^^ 밸리에서 왔습니다.

    아앗, 뭔가 모험의 패턴이 저랑 비슷해요.
    고생 많으셨지만 그럭저럭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입니다.
  • 봄이와 2010/02/07 17:36 #

    무언가에 집착하다보면 종종 이런 모험을 하게되곤하죠 :)
    프님이 겪은 모험도 궁금하네요 해피엔딩이셨나요?
  • 잠자는코알라 2010/02/07 15:12 # 답글

    홍대 앞의 빵집을 모두 들를 기세셨군요!!! 폴앤폴리나는 빵 하나라도 전화해서 예약해 두면 따로 챙겨놔 주시는 걸로 알고 있답니다 :)
    빠바;의 치아바타는 정말 반듯하게 생겼네요 -_-;; 가지런히 쌓여 있는 걸 보니 참.. =_=
    그래도 다행일지도 몰라요 노다메 칸타빌레 22권까지 들고 오셨으면.. 쓰러지셨을듯 ^^ 고생하셨어요!!!
  • 봄이와 2010/02/07 17:41 #

    네네 미루카레까지 가려다가 동생이말려서 겨우...
    아 폴앤폴리나는 그렇게 친절한 시스템이군요. 다음번엔 꼭! 예약해두고 들러봐야겠네요.

    노다메는 달랑달랑 책만 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한것 같기도 해요. 그냥 잘된거라고 믿고 지내려구요 맘편히.
  • bluexmas 2010/02/07 15:32 # 답글

    와 빵 많이 사셨네요 >_< 저도 요 며칠 몇몇 빵집들을 들렀어요. 빵 들고 다니는 거 엄청나게 힘들지 않나요-_-;;;
  • 봄이와 2010/02/07 17:44 #

    빵을 들고 다니면 꼭 케이크가 아니더라도 모양이 망가질까봐 조심조심하고 다니게 돼요.
    그리고 리치몬드의 슈크림은 한 개 손에 들었을때, 그 묵직함에서 이미 눈치챘지만,
    역시 12개는 확실히 무겁더군요. 무거웠어요.
    bluexmas님 빵쇼핑(으잉?)도 구경하고 싶군요 +_+
  • 달에 2010/02/07 22:57 # 답글

    빵 찾아 삼만리 하셨어요. 날씨도 추웠는데 고생하셨습니닷.
    포카치아는 식감이 묘해서 참 좋아하는 빵이예요. 이 밤에 보니 너무 먹고싶습니다.흑.
  • 봄이와 2010/02/09 14:24 #

    맞아요 포카치아는 포슬포슬 식감이 특이하죠.
    저는 빵을 너무 좋아해서 빵을 찾아서는 삼만리 아니라 오만리도 갈 기세입니다.
  • 강우 2010/02/11 06:03 # 답글

    빵들이 다 맛있어 보여요 +_+ 새우야채롤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행복이 밀려오는 새우님 ㅠ.ㅠ;;
  • 봄이와 2010/02/13 20:16 #

    네네 전자레인지에 30초 데워먹으니 더 맛있더라구요. 생각보다 새우들이 작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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